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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노트 9편] <김옥균의 갑신정변> 무엇이 아빠를 감동하게 했을까?부자노트 2026. 6. 9. 07:02
<140년전 역사가 아빠에게 가르쳐준 것들>
쟌쟌아,
아빠는 역사를 좋아해. 그래서 최근에 새로운 소설책을 읽었어.
바로 이상훈 작가의 '김옥균, 조선의 심장을 쏘다'
읽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140년 전 이 사람의 이야기가, 아빠가 투자하면서 겪은 것들과 너무 닮아 있는 거야.
역사책으로 갑신정변을 배울 때는 단순히 3일천하로 끝난 정변으로만 배웠거든.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아빠가 몰랐던 사실들이 더 있었어.
오늘은 그 사건 이야기를 먼저 제대로 해줄게.
역사를 알아야 교훈도 깊어지거든.

갑신정변-3일의 전말 (아빠가 Gemini AI로 만들었어요) 갑신정변이란 무엇인가
갑신정변(甲申政變)
1884년 12월,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조선의 낡은 체제를 뒤엎으려 일으킨 정변이야.
갑신년(甲申年)에 일어난 정치적 변란이라는 뜻이야.
결과부터 말하면, 72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어.
근데 그 72시간이 조선의 운명을, 그리고 이후 동아시아 역사 전체를 바꾸는 씨앗이 됐어.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누구인가
김옥균은 1851년에 태어난 조선의 개화파 지식인이야.
어릴 때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고, 과거에도 장원급제했어.
근데 그는 조선의 낡은 체제에 답답함을 느꼈어.
일본에 직접 건너가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히 발전하는 모습을 눈으로 봤고,
"조선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
그가 꿈꾼 조선은 이런 나라였어.
- 신분제를 없애고 능력으로 인재를 쓰는 나라
- 왕 혼자가 아니라 내각이 함께 결정하는 나라
-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나라
- 청나라에 기대지 않는 자주적인 나라
지금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야. 근데 1884년 조선에선 이게 혁명이었어.
왜 일어났나 — 시대 배경
당시 조선은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었어.
밖에서는 청나라, 일본, 러시아, 미국이 한반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어.
특히 청나라는 조선을 사실상 속국처럼 다루고 있었고,
민씨 척족을 중심으로 한 집권 세력은 청나라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어.
안에서는 부패가 극에 달했어.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았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했어.
그나마 걷힌 세금은 민씨 척족들이 모두 가져갔었지.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는 생각했어.
"지금 바꾸지 않으면 조선은 무너진다."
그 절박함이 정변으로 이어진 거야.
어떻게 무너졌나 — 3일의 전말
1884년 12월 4일, 김옥균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 연회를 이용했어.
연회장에 불을 지르고 혼란을 틈타 왕궁을 장악했어.
고종을 경우궁으로 이동시키고, 일본 공사관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새 정부를 선포했어.
14개조 개혁 강령을 발표하고, 조선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했어.
딱 하루 동안은.
그런데, 12월 6일 민비의 개입으로 청나라 군대 1,500명이 개입했어.
반면에 일본군은 150명에 불과했어.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았어.
당연히 일본 공사는 철수를 결정했고, 김옥균은 순식간에 기댈 곳을 잃었어.
고종은 청군 쪽으로 넘어갔고, 개화파 정부는 붕괴했어.
72시간이었어.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함께했던 동료들은 처형됐어.
일본으로 망명했어도 김옥균은 그 곳에서도 조선의 개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
그 결과를 마침내 다시 실행하려던 찰나,
망명 10년 후인 1894년, 그는 상하이에서 자객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어.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갑신정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도 엇갈려.
긍정적 평가는 이래.
조선 최초의 근대적 정치 혁명 시도였고,
14개조 정강의 내용은 실제로 10년 후 갑오개혁에서 상당 부분 실현됐어.
방향 자체는 옳았다는 거야.
비판적 평가는 이래.
일본 군사력에 기댄 정변이었고, 민중의 지지 없이 소수 엘리트만의 혁명이었어.
결과적으로 일본이 조선에 개입할 외교적 발판을 만들어줬다는 거야.
역사학자들이 갑신정변을 부르는 말이 있어.
"조선 개화사의 가장 빛나는 실패."
옳은 방향, 그러나 틀린 방법. 아빠는 이 평가가 마음에 걸렸어.
마무리 — 아빠가 이 이야기에서 뜨끔한 이유
쟌쟌아,
김옥균은 방향은 맞았어. 근데 실행에서 무너졌어.
타이밍이 틀렸고, 빌린 힘에 기댔고, 출구를 만들지 않았고,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가볍게 봤어.
아빠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꾸 투자 생각이 났어.
아빠도 똑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거든.
다음 편부터는 그 이야기를 써볼게.
역사에서 건진 투자 실패 교훈 4가지
— 그런데 사실 역사에서 건진 게 아니라, 아빠가 직접 겪고 나서 역사에서 재확인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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