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교훈 ㅣ 지금 연준은 어떤 선택을 할까?
번스의 안이함이 불러온 10년의 고통, 그리고 볼커의 결단
쟌쟌아,
아빠가 오건영 단장의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라는 책을 읽고 궁금해졌어.
1970년대 미국의 인플레이션 관련한 이야기인데 ,
그 당시 미국의 중앙은행이 '괜찮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대처했다가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치른 이야기야.
돈의 가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실제 역사란다.

왜 1970년대 미국에 물가가 폭등했을까? - 석유파동으로인한 물가상승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중동에서 석유 공급이 뚝 끊겼어.
이른바 '오일 쇼크'야.
기름값이 오르니 모든 물건값이 오르고,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979년 11%, 1980년에는 13.5%까지 치솟았어.
이게 무슨말이냐면, 쟌쟌이 좋아하는 미X 과자가 천원이면 1년 후에 1,350원이 되고, 2년이면 3,000원이 넘어.
천원이면 살 수 있었던 과자가 이제는 3천원을 줘야 살 수 있어.
그런데 당시 연준(미국 중앙은행)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는 이걸 보고 이렇게 생각했어.
"석유 때문에 오른 거니까, 금리를 올려봤자 소용없어. 오히려 경기가 나빠질 수 있잖아."
그래서 금리를 올렸다가도 조금 지나면 내리고, 또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단다.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가 시작됐어.
처음엔 공급 충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어차피 물가는 계속 오를 거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야.
기업은 미리 가격을 올리고,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기대심리로 자리 잡으면, 원인이 사라져도 물가는 스스로 계속 오르게 돼.
10년이 지나도 왜 안 잡혔을까? - 경제성장이 우선!
번스 이후 밀러 의장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어.
경제성장이 먼저야. 물가는 나중에 잡으면 돼.
결국 1970년대 내내 인플레이션은 잡히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경기까지 침체되는 최악의 상황인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왔단다.
물가도 오르고 경제도 안 좋고, 실업자도 넘쳐나는 이 고통의 시간이 무려 10년 가까이 이어진 거야.
폴 볼커는 어떻게 인플레이션을 잡았을까? - 물가인정이 먼저!
1979년 8월,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린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어.
폴 볼커는 취임 두 달 만인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밤, 긴급 FOMC를 소집했단다.
그리고 기준금리를 11.5%에서 15.5%로 단 한 번에 4%포인트나 올려버렸어.
당시 언론은 이를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불렀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 볼커는 결국 1981년에 기준금리를 21.5%까지 끌어올렸단다.
기업들은 줄줄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넘쳐났어.
빚더미에 앉은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워싱턴으로 행진했고,
볼커는 살해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정책을 멈추지 않았어.
그의 의지는 단 하나였어.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잡을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 현재의 답은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 13.5%에 육박하던 물가상승률은 1981년 9%, 1982년 4%, 1983년엔 2.36%까지 떨어졌어.
단 3년 만에 잡아버린 거야.
그리고 경기는? 긴축을 풀자마자 힘차게 되살아나서,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대호황이 시작됐단다.
1990년대 대호황의 토대가 바로 볼커의 고통스러운 결단에서 만들어진 거야.
아빠가 이 역사에서 배운 건 이거야,
인플레이션은 초기에 잡지 않으면 기대심리로 굳어버려.
그러면 나중에 훨씬 더 큰 고통을 감수해야 해.
당장 아프더라도 제때 치료하는 게 낫다는 것, 이건 돈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통하는 진리란다.
지금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진입하려는,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 또 벌어지려고해.
이 때 새 연준 의장 케빈 워시는 번스의 실수를 반복할까, 아니면 볼커처럼 결단을 내릴까?
아빠는 그게 정말 궁금해.
그래서 다음 편에서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어떤 판단을 할지 그에 따라 우리는 어디에 투자를 하면 좋을지 봐보자.